다겐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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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1967년 이전 스웨덴의 교통 사정 [편집]
2.1. 국민투표와 전환 준비 [편집]
당시 스웨덴에서는 저런 문제로 인해 아예 우핸들 위주로 차를 생산하게 하든지 아니면 통행방식을 바꾸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었고 1955년 국민투표에까지 붙여지게 되었다. 당시 국민들은 83%나 되는 수치로 전자를 선택했지만 당시 총리이던 타게 엘란데르(Tage Erlander)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는데, 이는 아무래도 당시 국민들의 신차 구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63년부터 '통행방향 전환위원회(HTK)'가 설립되고 전환 준비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전환비용은 무려 6억 크로나에 달했지만, 국민들이 차를 새로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에게 우측통행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우측통행을 주제로 한 노래 '스벤손 씨 오른쪽으로 가세요'를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스웨덴어로 오른쪽을 뜻하는 H(öger)자가 들어간 팬티까지(...) 만들기도 했었다(후방주의).
그리고 1963년부터 '통행방향 전환위원회(HTK)'가 설립되고 전환 준비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전환비용은 무려 6억 크로나에 달했지만, 국민들이 차를 새로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에게 우측통행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우측통행을 주제로 한 노래 '스벤손 씨 오른쪽으로 가세요'를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스웨덴어로 오른쪽을 뜻하는 H(öger)자가 들어간 팬티까지(...) 만들기도 했었다(후방주의).
3. 전환 당일 [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Kungsgatan_1967.jpg
1967년 9월 3일 새벽 1시경부터 거리에 있던 모든 차들은 운행을 중지하라는 통보가 전국에 내려졌고 차선을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만 천천히 이루어지다 보니 위 사진처럼 제때에 차선을 바꾸지 못하는 풍경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버스는 대다수가 케냐나 파키스탄 등으로 수출되었지만 일부는 양문형으로 개조되어 계속 운행되기도 했었다. 몇몇 도시들(예테보리, 노르셰핑)을 제외한 대다수의 노면전차들은 모두 폐선되었다.
1967년 9월 3일 새벽 1시경부터 거리에 있던 모든 차들은 운행을 중지하라는 통보가 전국에 내려졌고 차선을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만 천천히 이루어지다 보니 위 사진처럼 제때에 차선을 바꾸지 못하는 풍경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버스는 대다수가 케냐나 파키스탄 등으로 수출되었지만 일부는 양문형으로 개조되어 계속 운행되기도 했었다. 몇몇 도시들(예테보리, 노르셰핑)을 제외한 대다수의 노면전차들은 모두 폐선되었다.
4. 예외 [편집]
해당 변화는 자동차에만 한정된 것으로 기차, 전철(Pendaltåg), 그리고 지하철 등 궤도교통은 종전과 같이 계속 좌측통행을 유지하고 있다.[3]
5.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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